주관의 값어치 해골

 만인에게 동일한 의미로 통용되는 절대적인 텍스트 따위는 없다. 가장 권위있는 텍스트인 성경마저도 현실과 맞대어 끊임없는 해독의 작업을 필요로 하기에, 텍스트의 주관적 해석 능력은 교인을 비롯하여 그 누구에게라도 중요하다. 다만 주관에 입각하기에 앞서, 나는 다시금 팩트와 논리 명분의 중요성을 끄집어내고 싶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말은 그 어떤 명분에서 비롯하여 논리로 빚어내더라도 넝마조각에 불과하다. 또한 논리가 없다면 사실은 흩어진 사실에 머무른 채 그 어떤 구심점, 파급력도 지닐 수 없으며, 명분이 곧지 않은 말은 그 방향성 자체를 전면으로 부정당하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그 모든 주관에 값어치를 매기는 지극히 주관적인 작업에서 앞서 말한 셋을 잣대로 두려 한다.

 

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newsid=20110812174005177

모르면 말을 말어 씹새끼야

 

최근 에릭의 트윗을 보고 차라리 눅눅한 짜증을 느껴 이 잡문을 두드린다. 우선, 법정스님이 지옥불에 들어가 중생을 구제하네 어쩌네 하는 말을 했다는 것은 쌩판 개소리다. 기독교 까들이 우려먹던 겉간지 말을 법정스님의 사진과 합성한 짤방이 나돌았고, 이게 법정스님의 명언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짤방의 출처는 병신의 가람, 디씨다.

믿지 않는다 하여 자신의 자식이라 하는 인간들을 지옥불에 던져버리는 당신네들의 신들을 난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차라니 난 지옥에 가서 당신네 신에게 버림받은 그 억울한 영혼들을 구제하겠다.

허허. 말은 뻔지르르하니 좋다. 문제는 교황청에서 가톨릭적 가치관을 현대화하는 과정에서 신 7대 죄악을 지정할 떄에 이교도는 닥치고 삼면입체 불지옥! 따위의 교리를 철회했다는 것이다. 과거의 이교도는 기독교 신자가 아닌 모든 생물의 총칭이었다. 그러니 이교도는 사람도, 도덕적 고려의 대상도 아니었다. 허나 소통의 범위가 지랄맞게 넓어진 현대에는 온갖 가치와 정의들의 맞물려 합치를 이룬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가톨릭은 교리의 배타성을 걸러내는 등 수정작업을 거쳤고, 지옥이 지니는 보상적, 보복적인 의미도 그 범위가 변했다. 이는 종교적 텍스트의 해석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좋은 예다. 때문에, 위의 저 발언은 텍스트의 가변성에 대한 한줌의 이해도 없는 뜨내기의 헛소리지, 종교지도자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다. 법정스님께선 타 종교간의 교리를 관통하는 사랑을 누구보다도 중히 여기신 분이었다. 아니 씨발 그니까 저거 법정스님이 말한 거 아니라고. 이로 인해 에릭의 말은 사실에서 근거하지 못한, 그래 니들 표현대로 반석 위에 짓지 못한 집이다.

둘째로 논린데, 미안. 내가 아직 학식이 부족하여 눈감고 귀막고 지혼자 시련이네 고난이네 주억거리고 있는 병신새끼에게 논리의 잣대를 들이댈 자신이 없다. 섣불리 추측을 해보자면, 그냥 저새끼는 머리가 나쁜 것 같다. 이상 논리 끗.

명분면에서는 앞서 말했던 지옥의 보상적, 보복적 의미에 대해 다시 말하고 싶다. 내세의 심판은 교인들에게 행위의, 신앙의, 나아가 삶의 의미가 된다. 권선징악의 궁극적 형태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교리가 일부 신자들의 배타성과 더해지면 답이 안나오는 독선이 탄생한다. 종교가 지니는 배타성을 초월해 그 교리를 사랑으로 관통하여 해석해낸, 차라리 초월자로 일컬음이 옳을 구도자를 사실에서 비롯하지 않고 논리조차 없는, 게다가 독선으로 일관한 보상심리로 해석해낸 얼간이의 주관에 나는 몇점을 주어야 할까. 그래. 내 점수는요, 아름다움이다 새끼야 예수가 사박다니를 외치며 골고다에서 못박혀 죽은 게 너같은 새끼의 죄마저도 대속하기 위함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한숨이 다 나온다 씨팔

 

 몇자 덫붙여서, 나는 심판의 교리가 함의한 저열한 보상심리를 지독히도 증오한다. 다만 용서하라는 예수의 말은 너무도 숭고하다. 허나 영생으로 보상받기 위해 다만 용서하라는 천국의 교리는 선행의 목적의식을 지극히 천박하게 만든다. 약속된 보상을 믿고 행하는 선행은 얼마나 허무한가. 일필 휘지. 돌이킬 길이 없고 끝이 있어 값진 삶의 붓질에 영생, 심판이라 하여 획을 더함은 얼마나 추잡한 훼손인가.


우리들의 지혜에 대하여 해골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멀리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앞을 보니 인사불성으로 취한 여자가 주유소 옆 오토 서비스 정비소 문짝에다가 온몸을 쿵쿵 들이받고 있었다. 주유소에 붙어있는 마트에서 직원이 나왔다가는, 여자의 상태를 보곤 냉큼 다시 들어갔다. 취한 사람은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던가. 그는 너무나도 지혜로웠다.

이내 여자는 내가 일하고 있는 가스 충전소쪽으로 다가왔다. 술을 미친듯 마신 듯 걸음걸이는 之자에 가까웠다. 곰한테 도망칠 때는 갈지자로 뛰라던데..따위의 생각을 하며 기계적으로 충전구를 열고 주입기를 꽂았다. 여자는 계속 무슨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다섯걸음정도의 거리에서야 겨우 제대로 들렸다. 저기요, 저기요 하고 여자는 계속 말하고 있었다. 

아둔한 나는 여자에게 다가가려 했다. 충전소 주변엔 택시가 널리고 널렸으니 택시를 잡으러 왔겠지, 하고 짐작했다. 허나 주변에 서있던 지혜로운 택시기사가 내게 말했다. 
"냅둬. 저정도로 취한 사람은 괜히 건드려봐야 손해만 봐."
충분히 현명한 나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들었다. 여자는 자판기 앞에 주저앉아 여전히 저기요, 를 중얼거리며 흐느끼고 있었다. 세명의 택시기사는 각자 여자를 조롱하고, 비판하고, 무시했다. 현명한 나는 비틀거리는 여자를 가볍게 조롱했고, 스스로 절제하지 못한 여자를 비판했고, 다가가지 않음으로써 무시했다.

새벽알바란 지독히도 무료한 것이어서, 이내 택시기사들은 모두 떠났고 여자도 비틀비틀 차도쪽으로 사라졌다. 한 20분정도 멍하니 있다가, 문득 여자가 어찌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걸음걸이로 보아선 멀리 갔을 것 같진 않았다. 교대로 일하고 있던 근무자에게 좀 쉬고 오겠다 말하고, 여자가 걸어갔던 대로쪽으로 가봤다. 양심이나 동정심때문이 아니라, 그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손님도 없으니 딱히 할 일도 없었고. 이때까지의 나는 지독히도 현명했다.

대로를 따라 걸어가자,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잔뜩 취해있는 여자가 내뱉는 말들은 대개 단어가 되지 못하는 것들이었고, 간간히 나쁜 새끼..등의 말들을 토해내고 있었다. 여자의 옆에는 검은 패딩을 입은 남자가 앉아서는 여자를 위로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현명한 나는 담배를 한대 태우며 그들을 바라보다 충전소로 돌아왔다. 충분히 지혜로운 내겐 해야할 것이 없었다. 

다시 충전소로 돌아와서 칼바람을 맞고 있자니, 우리들의 지혜에 대해 송축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때때로 너무나도 현명하다. 마치 먹이를 앞에 둔 개새끼처럼.

국카스텐 감상

 국카스텐을 처음 본 것은 작년 이맘때 쯤이었다. 수능이 끝나 지독히도 잉여로운 삶을 살고 있었던 나는, 예술의 전당에 장기하가 온다는 말을 듣고 냉큼 찾아갔다. 라인업은 국카스텐/장기하. 수험생할인으로 표값은 5천원, 뭐 손해볼 것은 없겠지 하는 마음으로 간 것이었는데, 손해는 커녕 잭팟을 맞았다. 

첫인상은 뭐야 이 또라이들은..이었다. 베이스는 반쯤 미쳐서 날뛰고 보컬 하현우는 파워간지를 넘어서 차라리 광기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보인다. 우와 씨발! 존나 멋진 병신들이네! 라고 생각하고 친구놈에게 사발을 풀었는데 알고보니 그놈도 국카스텐 빠였다. 그놈한테 CD도 받고 표도 받아 간간히 라이브도 갔다. 노래방에서는 맨날 '거울'을 부르려 시도하는데 번번히 실패한다. 뭐이리 높아 미친

국카스텐의 음악은 그 색이 매우 독특하다. 인디음악의 주류가 모던록을 위시한 '편한 음악'임을 고려할 때, 이펙터와 속주, 보컬의 강렬한 샤우팅은 국카스텐의 음악을 진정 희귀한, 독보적인 것으로 있게 한다. 그러면서도 인디신 최고의 장점인 생음악, 날것의 매력이 잘 묻어난다. 
개인적으로는 국카스텐 최고의 장점을 가사로 꼽고 싶다. 영화, 책, 게임등 모든 매체가 스토리텔링에 익숙해진 요즘, 노래의 가사마저도 이야기의 형식에 구속되는 괴현상이 나타났다. 이에 반해, 국카스텐의 가사는 이미지즘의 성향이 짙다. 몇개의 심상을 집요하게 풀어나가며 곡에 어우러지는 노랫말은 자극성과 심미성, 모두를 만족시킨다. 가사에 진정성이 없다느니, 현학적이라느니 개소리 늘어놓는 병신들이 있는데, 편하게 그냥 못알아쳐먹겟다고 말해 좆병신들아!

밴드는 망했다. FT아일랜드 씨앤블루 이런 개새끼들은 구라쳐서 장사질을 하고, 아이돌들은 개나소나 기타들고 스틱들고 화보, 뮤직비디오를 찍는다. 밴드는 이제 하나의 이미지코드로 전락했다. 이러한 세태에서 살아 날뛰는 국카스텐은 의미가 큰 밴드다. 그 모든 의미를 차치해두더라도, 노래 자체가 존나 좋다. 꼭 들을 것을 권한다.


치열함! 필요

 원래 병신의 삶은 폐허와도 같은 것이어서 매일매일이 전쟁터지. 존나 쿨한 좆병신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사는 수밖에 없다. 좋다 아침! 신선함! 씨발! 

참아주세요 필요

여성분들, 세상이 흉흉하니 가슴 졸이실 일이 많아 불안하시지요. 요즘은 활자가 너무나도 보편화되었으니 그 불편한 심사, 인터넷에 푸시려는 그 마음 전부 이해합니다. 기실 군대라는 것이 주변 남자들 모두가 가는 곳이고 하니 그리 생소하지도 않으시겠지요.
거리에서 휴가나온 군인들, 예비군들도 많이 보셨을테니 군대라는 체제가 퍽 친숙하실겁니다. 더욱이 요즘같이 군대가 이슈화된 시기에는 이슈에 탑승하여 뭐라도 말씀해보고 싶으시겠지요.
그러나 부디 참아주세요. 충분한 이해와 숙고가 없는 발언이라고 생각되신다면, 아니 저열한 두뇌로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실테니 그냥 그 비좁은 마음에 조금이나마 캥기는 점이 있다고 여겨진다면, 부디 놀리는 입을 당장 닥쳐주세요.
차이에 대해 생각없이 논함은 스스로의 인격을 격하하는 행위일 뿐더러, 기실 의미도 재미도 그다지 없는 짓거리입니다. 생리에 대해 '여성으로서의 주기적인 아이덴티티의 발현인데 불편할 이유가 뭐냐. 난 차라리 부럽다'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할 필요는 없듯이요. 마찬가지로 만연한 성폭행에 대해 '피할수 없으면 즐기세요'라고 떳떳이 말할 수는 있지만, 했다가는 인간쓰레기의 나락에 떨어지기에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는 않듯이요. 의무의 강제성에 대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면, 그냥 닥쳐주세요. 서로 편하게요.

미필자 여러분들, 늘어진 젖탱이 붙잡고 서든어택이나 하다보니 전쟁이 가볍고 즐거워보이지요?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니 전쟁이 감동적이고 멋지게 느껴지시지요? 그 저능한 두뇌로 오롯한 생각을 하시는 것이 너무도 힘드시리라는 것을 잘 알지만, 부디 닥쳐주세요. 전쟁은 즐겁지 않아요. 옷못입고 밥못먹고 집버리는, 의식주가 삼위일체로 퇴갤하는 두려운 일입니다. 물론 전쟁에 내포된 부조리와 폭력성, 비인간성등은 그 간편한 두뇌로 이해하실 수 없을테니 고려하지 마세요. 원래 감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형용조차 하지 않는 것이 도리고 현명함이죠.

군필자 여러분들, 의무병역기간을 끝내고 오시니 미필자 모두가 좆같고 같잖아보이시죠? 게다가 안보 장관 회의 구성원의 8할이 미필니 그들이 정말 한심하고 스스로가 너무도 뿌듯하시겠지요? 그래도 아무나 붙잡고 미필이냐고 삿대질하시는 것은 참아주세요.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도 위대하신 군필자분들에겐 같잖게 보이시겠지만, 그래도 의무이행을 그리 대단한 자랑으로 생각지는 말아주세요. 모두가 해야할 것이기에 의무병역의 오롯한 수행은 스스로 떳떳해질 수 있는 계기로서는 훌륭합니다만, 그렇다고 타인 모두와 스스로를 구분짓는 절대적인 잣대가 되지는 않아요. 군필드립은 술쳐먹고 후배들, 동기들 앞에서나 늘어놓으세요. 인터넷에서까지 사발풀면 진짜로 추해지니까요.

그리고 자주국방개념 자체가 너무도 버거워 노예근성에 찌들어 사시는 훌륭한 국민여러분, 미국이 비행기에 배까지 띄워준다니 황송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는 동방예의지국의 국민여러분, 부디 닥쳐주세요.
기형적 체제가 너무도 오래 존속되다보니 자주를 표방하기가 지독히도 두려운 그 현명한 심사들을 이해는 합니다만, 그래도 부끄러운 줄을 알아주세요. 너님들이 몸담을, 몸담고 있는, 몸담았을 군대가 유사시에 스스로는 작전권 발현도 못한다는 사실이 오래도록 고착화되어 당연해보이겠지만, 그래서 의존하는 것이 이젠 오랜 습관이 되어버렸겠지만, 그래도 그거 존나 부끄러운겁니다. 이 간쓸개 두뇌까지 빠진 버러지 씹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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