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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말을 말어 씹새끼야
최근 에릭의 트윗을 보고 차라리 눅눅한 짜증을 느껴 이 잡문을 두드린다. 우선, 법정스님이 지옥불에 들어가 중생을 구제하네 어쩌네 하는 말을 했다는 것은 쌩판 개소리다. 기독교 까들이 우려먹던 겉간지 말을 법정스님의 사진과 합성한 짤방이 나돌았고, 이게 법정스님의 명언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짤방의 출처는 병신의 가람, 디씨다.
믿지 않는다 하여 자신의 자식이라 하는 인간들을 지옥불에 던져버리는 당신네들의 신들을 난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차라니 난 지옥에 가서 당신네 신에게 버림받은 그 억울한 영혼들을 구제하겠다.
허허. 말은 뻔지르르하니 좋다. 문제는 교황청에서 가톨릭적 가치관을 현대화하는 과정에서 신 7대 죄악을 지정할 떄에 이교도는 닥치고 삼면입체 불지옥! 따위의 교리를 철회했다는 것이다. 과거의 이교도는 기독교 신자가 아닌 모든 생물의 총칭이었다. 그러니 이교도는 사람도, 도덕적 고려의 대상도 아니었다. 허나 소통의 범위가 지랄맞게 넓어진 현대에는 온갖 가치와 정의들의 맞물려 합치를 이룬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가톨릭은 교리의 배타성을 걸러내는 등 수정작업을 거쳤고, 지옥이 지니는 보상적, 보복적인 의미도 그 범위가 변했다. 이는 종교적 텍스트의 해석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좋은 예다. 때문에, 위의 저 발언은 텍스트의 가변성에 대한 한줌의 이해도 없는 뜨내기의 헛소리지, 종교지도자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다. 법정스님께선 타 종교간의 교리를 관통하는 사랑을 누구보다도 중히 여기신 분이었다. 아니 씨발 그니까 저거 법정스님이 말한 거 아니라고. 이로 인해 에릭의 말은 사실에서 근거하지 못한, 그래 니들 표현대로 반석 위에 짓지 못한 집이다.
둘째로 논린데, 미안. 내가 아직 학식이 부족하여 눈감고 귀막고 지혼자 시련이네 고난이네 주억거리고 있는 병신새끼에게 논리의 잣대를 들이댈 자신이 없다. 섣불리 추측을 해보자면, 그냥 저새끼는 머리가 나쁜 것 같다. 이상 논리 끗.
명분면에서는 앞서 말했던 지옥의 보상적, 보복적 의미에 대해 다시 말하고 싶다. 내세의 심판은 교인들에게 행위의, 신앙의, 나아가 삶의 의미가 된다. 권선징악의 궁극적 형태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교리가 일부 신자들의 배타성과 더해지면 답이 안나오는 독선이 탄생한다. 종교가 지니는 배타성을 초월해 그 교리를 사랑으로 관통하여 해석해낸, 차라리 초월자로 일컬음이 옳을 구도자를 사실에서 비롯하지 않고 논리조차 없는, 게다가 독선으로 일관한 보상심리로 해석해낸 얼간이의 주관에 나는 몇점을 주어야 할까. 그래. 내 점수는요, 아름다움이다 새끼야 예수가 사박다니를 외치며 골고다에서 못박혀 죽은 게 너같은 새끼의 죄마저도 대속하기 위함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한숨이 다 나온다 씨팔
몇자 덫붙여서, 나는 심판의 교리가 함의한 저열한 보상심리를 지독히도 증오한다. 다만 용서하라는 예수의 말은 너무도 숭고하다. 허나 영생으로 보상받기 위해 다만 용서하라는 천국의 교리는 선행의 목적의식을 지극히 천박하게 만든다. 약속된 보상을 믿고 행하는 선행은 얼마나 허무한가. 일필 휘지. 돌이킬 길이 없고 끝이 있어 값진 삶의 붓질에 영생, 심판이라 하여 획을 더함은 얼마나 추잡한 훼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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